나의 이야기/사진으로 보는 이야기

박태주 선생님의 동화 해피 햄스터

남승원(외향) 2013. 8. 26. 17:58

 

<아동문예 문학상>              

해피 햄스터

 

                                                   

                                                            박  태  주

 

 바깥세상을 구경할 기회가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습니다.

 나는 고향이 어딘지도 모르는 채 두 달 전에 이곳 23층 아파트에 팔려와 살고 있는 햄스터예요. 내가 명석이 손에 들려 나가자, 친구 앵무새가 우리 속에서 고개를 꼬며 부러운 듯이 나를 바라봅니다.

 명석이 집에 사는 친구들 중에서 애완견인 치와와를 빼고는 내가 최초로 아파트를 벗어나는 영광을 차지한 거예요. 에인절피시도 어항 끝까지 따라와서 눈을 끔뻑거리며 시샘을 합니다.

 “나만 나가서 미안해. 다녀와서 바깥세상 이야기 해줄게.

 나는 명석이의 손에 집채로 들려 아파트를 나섰습니다. 바깥은 공기 맛이 상쾌했어요. 진달래, 개나리꽃도 나를 반겨주었고요. 오랜만에 봄의 향기로 가득한 흙냄새도 맡으니 살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동물의 세계’를 공부하는 날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집에서 기르는 애완동물을 한 마리씩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집에서 기르는 애완동물이 없는 아이들은 학교입구에서 햇병아리와 남생이, 심지어는 달팽이도 사왔어요. 교실 안은 갑자기 동물원으로 변했습니다.

 아이들이 우리 동물친구들에게 관심을 보일수록 피곤했어요. 남생이는 목을 움츠려 등딱지 속에 숨었고, 달팽이는 얼른 촉각을 오그렸지요. 동물친구들에겐 어리둥절하고 불쾌한 시간이었습니다. ‘동물의 세계’ 관찰수업이 왁자지껄 끝난 뒤 명석이는 나를 들고 선생님께 다가갔습니다.

 “선생님, 이거 가지세요. 선물이에요.

 나는 서운했어요. 어쩌면 주인이 바뀌는 순간이잖아요. 선생님은 처음엔 뜨악해 하다가 이내 온아한 웃음을 지시며 나를 반겨주었습니다.

 “햄스터구나. 얘 이름이 뭐니?

 “해피예요.

 “귀엽기도 해라. 몇 살이니?

 “겨우 세 달 됐어요.

 “아직 새끼구나. 이렇게 예쁜데 왜 키우지 않고 나를 주려고 하니?

 “집에 또 있어요. 선생님은 오늘 애완동물 안 가져오셨잖아요. 그냥 키우세요.

 명석이가 선생님을 생각해서 하는 말로 들렸습니다.

 “정말, 내가 키워도 되겠니?

 “해피 잘 키워주세요. 선생님, 약속!

 

 명석이는 선생님과 약지를 걸고, 엄지손가락으로 도장까지 찍었습니다. 그런 뒤 내게는 헤어지는 인사도 없이 쌔-앵 달아나버렸습니다. 나는 이제 어디에서 살게 될까요? 팔려가는 것은 아니지만 아파트 친구들과 이별을 하게 되었잖아요. 바깥세상 소식을 전하지도 못하고 말이에요. 친구 앵무새와 에인절피시는 내 처지를 알기나 할까요? 나는 서글픈 생각에 잔뜩 움츠리고 있었습니다. 

  새 주인이 된 아줌마 선생님은 방과 후 나를 데리고 집으로 갔습니다. 1층 개인주택 집이었습니다. 작은 정원도 있어서 베란다 창문이 열리면 풀냄새, 흙냄새도 맡을 수 있었습니다. 동물친구로는 유일하게 카나리아가 있었고, 나를 귀찮게 하는 멍멍이나 고양이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아줌마 선생님은 마음이 착한 분이었습니다. 내가 사는 철조망집을 베란다로 드나드는 거실 창문 옆에 놓고는 별별 치장을 다 해주었습니다. 내 집 위에 사는 카나리아가 나를 보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넌 어디서 온 누구니?

 “응, 안녕. 23층 아파트에서 살다 온 ‘해피’란다.

 “난 ‘리아’라고 해. 얼마에 팔려왔니?

 “팔려오다니.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아니긴. 너처럼 재롱 잘 부리는 꼬마 햄스터를 누가 공짜로 주겠니? 나도 노래를 잘 불러서 높은 가격에 팔려 왔는데.

 나는 그동안의 사연을 자상하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때야 카나리아가 고개를 끄떡이며 선배노릇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집은 우리들이 살기엔 꽤 좋은 집이야. 먹을 것을 때마다 넘치도록 주니까 말이야. 단 한 가지······.

 “그게 뭔데?

 “주인아저씨가 직장에서 명예퇴직해서 몇 년째 실업자로 있거든. 그런데 담배골초야. 문제는 여기 베란다에서 자주 피운다는 거야. 주인아줌마와 이야기 하는 것을 들어보니 아직 일하실 나이인데 직장을 잡지 못해 우울증이 왔다나 봐.

 “안 됐구나. 두 부부만 사시나?

 “대학생 아들이 하나 있어. 취업재수를 하고 있는데 매일 공부하느라 저녁 늦게 집에 들어와. 한번은 대학생 형이 나에게 자유를 준다며 새장 밖으로 내놓은 적이 있었어.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 버리지 그랬니?

 “마음은 그러고 싶었지. 하지만 난 용기가 나지 않았어. 어느새 이곳 생활에 길들여진 거야. 더욱이 날개 힘도 빠졌고.

 “그랬구나. 나라면 자연 속으로 마음껏 기어갔을 거야.

 카나리아는 여기에 사는 것이 참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 형은 잘해줘?

 

 “착해. 가끔 내게 와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곤 해. 그때마다 난 잘 될 거야, 하고 노래로 말해주지.

 나도 차차 카나리아가 느끼는 행복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주인아줌마가 우리들을 무척 사랑해 주셨거든요. 특히 아줌마는 ‘햄스터 잘 기르기’라는 책을 보시며 내게 신경을 써 주셨습니다.

 나도 이제 주인아줌마의 발걸음 소리는 물론 눈빛에 담긴 마음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주인아줌마가 내 집 청소를 해주며 나를 덜컥 손으로 잡는 게 아니겠어요? 그 때 나는 본능적으로 주인아줌마의 손에 핏자국을 남겼지 뭐예요.

 “이놈의 몹쓸 햄스터! 먹을 것을 주나 봐라.

 나도 모르게 그만! 눈물이 났습니다.

 나는 무엇인가를 갉아먹지 않으면 이가 자라나 견딜 수가 없는 동물입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주인아줌마가 넣어 준 나무토막이나 상자박스 등을 밤마다 갉아야 합니다. 주인아저씨는 그런 나를 ‘시끄럽다’며 베란다로 내놓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주인아줌마가 얼른 나를 거실로 데려오곤 했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어요. 나의 오줌, 똥까지 치워주고 때때로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견과류를 주기도 하시지요. 그런 아줌마의 손등에 상처를 냈으니 나도 참 못된 햄스터입니다.  

 그러나 주인아줌마는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나를 몇 끼 굶기는 것으로 화풀이를 끝냈습니다. 그래도 서러운 것은 아줌마가 전에 없이 나를 경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때부터 주인아줌마를 최대한 돕기로 했습니다. 우선 오줌통에 들어가서 소변을 보고, 좁쌀보다 작은 똥이라고 한쪽에 가지런히 누었어요. 갉아 먹는 소리도 최대한 작게 냈습니다.

 내가 오줌통에 용변을 본 첫날이었습니다.

 “여보! 이리 와 보세요. 해피가 이렇게 영특할 수가 없어요!

 “은혜를 모르고 할퀴기나 하는 잡종한테 또 속으려고 그래?

 “해피가 드디어 오줌통에 오줌을 쌌다니까요.

 “저런 게 뭘 안다고. 어쩌다 그랬겠지. 아유, 지려! 내다 버려.

 주인아저씨는 부쩍 신경질이 늘었습니다.

 “직장을 못 구하니 오죽 답답하겠어?

 “제발 담배라도 집 밖으로 나가서 피웠으면 좋겠어.

 카나리아는 담배만큼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투덜거렸습니다.

 주인아줌마가 ‘산에라도 좀 다니세요.’라며 남편을 밖으로 내몰려 해도 사람 만나는 걸 피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리아야. 너는 노래 잘하는 새니까, 주인아저씨께 좋은 노래를 들려주렴. 지금 시작해 봐. 나는 재롱을 부릴 테니.

 나의 말에 리아는 큰 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방문을 쾅 열고 나온 아저씨가 카나리아에게 소리쳤습니다.

 “너까지 왜 그래. 어디 아프니?

 

 여전히 불퉁했습니다. 그러다 땀을 뻘뻘 흘리며 보란 듯이 쳇바퀴타기, 매달리기, 줄타기 등 온갖 재주를 다 부리는 나를 찬찬히 보더니

 “고놈, . 재주도 좋네. 하하하.

 처음 듣는 주인아저씨의 웃음소리였습니다. 그제야 주인아저씨는 리아에겐 과자를, 내게는 사과를 잘게 깎아주었습니다. 최고의 맛이었어요. 나는 감사하다는 뜻으로 다시 신나게 쳇바퀴를 돌렸습니다.

 “여보, 해피가 사과를 좋아하던데?

주인아줌마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아저씨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는 또다시 눈물을 글썽이며 철조망에 달려 재롱을 부렸습니다. 주인아줌마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우리 해피, 그래 네 맘 내가 잘 알지.

 그 뒤로 주인아줌마는 내가 재롱을 부리든 안 부리든 사과를 주셨습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아줌마 손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나를 손바닥에 올려놓기를 기다린 것이지요. 그러나 아줌마는 흠칫 놀라 손을 뒤로 빼곤 했습니다. 

 주인아줌마가 내 진실한 마음을 알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나는 너무 열심히 재롱을 부리다가 그만 뒷다리에 상처가 났고, 점점 커져 종기가 되어 아려오도록 아무도 몰랐습니다. 대학생 형이 취직시험에 합격한 날이었습니다.

 “어머니, 해피가 병에 걸렸나 봐요. 뒷다리에 혹이 보여요!

 나의 상처를 맨 먼저 본 대학생 형이 놀라워하며 소리쳤습니다.

 “해피야. 미안해. 어서 병원에 가자.

 주인아줌마는 무심코 나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뒷다리 상처를 어루만져주었습니다. 나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동물병원 수의사의 진단은 의외였습니다.

 “피부암입니다. 얼마 못 살 것 같은데 자연 속에서 마지막을 지내게 하면 어떨까요?

 주인아줌마는 눈물을 흘리며 추워지기 전에 나를 방생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나는 리아와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고, 해질녘에 야산에 버려졌습니다.

 “해피야. 어서 가, 어서. 숲 속에서 잘 살아야 돼. 안녕.

 주인아줌마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산을 내려갔습니다. 쓰르라미 우는 밤이 되었습니다. 마침 하늘에 떠 있는 반달님이 꾸벅 인사했습니다.

 “해피님, 실망하지 마시고 달나라로 오세요.

 “고마워. 하지만 내가 갈 곳은 따로 있어.

 나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밤을 지새웠습니다. 새벽엔 이슬이 내려 추웠지만 멀리서 해님이 떠오르자 기지개를 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해피야, 해피야!

 주인아줌마의 다급한 목소리였습니다.

 “너 아직 여기 있었구나. 그럴 줄 알았어. 미안해.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

 

 나는 주인아줌마의 품속에서 스르르 잠에 빠졌습니다. 얼마나 잤을까. 리아의 사랑의 노랫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해피야. 사랑해. 주인아줌마도 너를 버리고 오신 뒤 간밤에 한 숨도 못 주무셨단다. 

 “고마워, 리아야.

 나는 커튼 사이로 들어온 햇살에 눈을 깜빡이며 기지개를 쭉 폈습니다. 순간 뒷다리에서부터 시작된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찌릿 온몸으로 퍼졌습니다.

 “찌익!

 나는 묵직한 고통을 참으려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주인아저씨가 톱밥과 작은 팻말을 대문 밖에서 안고 들어왔습니다. 아줌마는 페인트 붓으로 팻말에 정성껏 글을 썼습니다.

 ‘사랑하는 해피 햄스터 꿈꾸는 곳’

 “어때요? 해피가 죽으면 저기 목련나무 아래에 수목장을 하고 붙일 거예요”

 아줌마가 팻말을 들어보였습니다.

 ‘찌릿!

 다시 시작된 지독한 아픔이 마치 바늘로 찌르는 듯했습니다. 리아도, 아줌마도, 아저씨도 가물가물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난 신음 대신 행복한 웃음을 지어보였습니다.

 

 

 

 

--박태주선생님은

소설가이며. 한국문인협회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현재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출강을 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