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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칼럼

남승원(외향) 2010. 7. 17. 09:13

박정근의 문화에세이] 한국전쟁에 대한 현대적 소화는 가능한가

2010년 07월 08일(목) 14:09 [(주)포천신문사]

 

↑↑ 박정근 대진대 교수, 본지 칼럼위원장

ⓒ (주)포천신문사

요즘 TV에서 방영되고 있는 ‘전우’를 보면서 가슴이 답답하였다. 제작진의 의도는 신세대들이 전혀 6.25전쟁과 북한의 침략성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는 것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지 모르겠다. 이 작품이 픽션이긴 하지만 동족끼리 무자비하게 총질을 하는 모습을 보고 민족 전체가 이념의 노예가 되어 인간성을 상실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부하들을 위해서 죽음을 불사하고 구조하는 분대장(최수종 분)이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남북한의 군인들이 서로 광적인 상태에서 인명을 살상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민족적으로 한탄스럽게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영웅적인 분대장은 후퇴하다 북한군의 총상을 입고 쓰러진 부하를 찾으러 나선다. 북진하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사단전체가 포위되어 후퇴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벌어진 일이라 살아있는 것을 알지만 구하지 못하고 퇴각했던 것이다. 그는 구조불가라는 소대장의 명령을 어기면서 야음을 틈타 그를 구조하지만 소대장의 분노를 사 직결심판을 받을 뻔한 위기에 빠지기도 한다.

아군을 위해서 어떠한 위험도 불사하는 군인정신을 영웅화시킬 수는 있지만 그들과 맞서 싸우고 있는 북한군들도 사실 공산주의라는 이념과 북한군 조직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전쟁에 참여했을 뿐임을 시인할 수밖에 없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6.25전쟁 이후 60여년이 지난 지금 이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통일 조국을 앞당기는데 도움이 될 것인가. 많은 양민학살사건들이 단지 낮에는 국방군, 밤에는 빨치산이 점령하는 이중적 이데올로기의 영향하의 마을의 양민들이 단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부역에 동원되었다는 이유로 생명을 잃는 비극임을 인권위가 밝혀낸 바 있다.

이 시점에서 희생자의 이념이 좌이냐 우이냐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정학적으로 좌우가 부딪치는 모순된 사회가 만들어내는 허위적 이념의 희생자일 뿐이다. 새삼 남쪽의 국방군의 살해행위는 애국적이고 북쪽의 인민군의 살육은 그르다는 이분법은 우리 민족의 통합을 위해서 도움이 안 될 것이다.

한반도 적화통일을 위해서 6.25전쟁을 일으킨 김일성 북한 정권에 대한 역사적 심판은 분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동일하게 이루어져할 것은 전쟁 상황에서 벌어진 수많은 양민학살사건에 대해서도 못지않게 이루어져서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가를 후세에 교훈으로 남겨야 한다.

천안함 사건 이후에 극우세력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 불사론은 6.25전쟁에 대한 깊은 성찰이 이루어지지 않는데서 일어나는 만용이라고 본다. 김정일 정권의 호전성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늦추어서는 안되겠지만 수백만의 인명을 앗아간 6.25전쟁을 반복해도 괜찮다는 생각은 위험천만의 발상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가 신세대에게 6.25를 가르쳐야 할 중요한 것은 전쟁보다 평화가 되어야 한다. 남북이 서로 총을 겨누며 증오를 키워왔던 것을 후세에게 물려줄 일은 아니다. 증오심이 가득한 사람은 결코 사랑할 수 없다. 이제는 휴전선을 두고 총칼을 겨누어야 하는 행위가 얼마나 반민족적인가를 가르쳐서 한민족을 나누고 있는 장애물들을 거두어야 할 때이다.

사실 신세대들은 그들이 체감하지 못한 전쟁의 비인간성을 배워서 다시는 한반도에 전쟁에 대한 유혹을 단호하게 떨쳐버려야 한다. 오히려 남북의 권력자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명분이 없이 목숨을 잃은 이 땅의 젊은이들의 명복을 빌어주기 위한 진혼곡을 불러야 할 것이다.

이영진 시인은 “어느 고지에서”라는 시에서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어 증오의 실체가 없는 적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군인의 부조리성을 노래하고 있다:

이름 없는 무덤
그대 한 칸의 낡은 집
키 작은 잡목보다 낮은 그대의 지붕 위에
철모를 쓰고 앉아
2km 전방의 눈금
가늠쇠 속으로 드러나는 휴전선을 바라다 본다.
지리시간에 한 나라라고 배운
아득하게 먼 나라의 산천을 바라다 본다.
우리가 알기도 전에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땅
그래서 이미 나의 지역이 나닌 곳을 향하여
총구를 겨누고 있다
그러나 아메리카식 자동소총 M16이여
상속된 유산처럼 총구 앞에 와 머무는 땅이여
우리는 한 번도 적을 만든 적도
스스로 적이 되어 본 적도 없었다.
하늘 아래 산들은
신들끼리 억센 어깨 든든히 걸쳐가며
첩첩이 모여 사는데
어디선지 빈 허공 속에서
나를 불러대는 것은 무엇이냐
애터지게 나를 부르는 것은
총구 앞에서
마른 풀잎들만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데.

박정근 / 대진대 영문학과 교수, 본지 칼럼위원장, 윌더니스 주간

출처 : 노원문인협회
글쓴이 : 박정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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