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이야기/이런일이 있었어

2011년 7월31일 Facebook 두 번째 이야기

남승원(외향) 2011. 7. 31. 17:35
  • 소중한 인연

    소중한 인연 /남승원

     

     

    딸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 하얀 목련 꽃잎이 아파트 담장 밑으로 떨어지며 나를 더욱 슬프게 하였다. 설레임 만큼이나 기뻐야할 시간, 겨우 입학식에 참석하여 뒤에서 눈물을 훔치며 딸아이 뒷모습을 지켜보며 마음으로 이렇게 기도 하였다.

     

    ‘하나님 저 아이가 20살이 될 때까지 만이라도 이 모습, 이대로 옆에 있게 해 주세요.’

     

    다른 엄마들처럼 학교 끝나면 기다려주지도 못하고, 옆집아이 엄마들처럼 학교일에 앞장서서 도와 줄 수도 없었지만, 학부모가 되는 설레임은 누구 못지않아 엄마로써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동안 류마치스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있던 나는, 퉁퉁 부은 무릎으로 앉고 일어서는 것도, 오래 서 있는 것도 힘들어, 오랫동안 약을 먹고 있어서 면역도 많이 떨어져 감기만 걸려도 관절 마디마디가 부어 아파 누워 있는 것조차도 힘겨웠었다.

     

    딸아이가 입학 할 때, 자꾸 부어서 몸무게가 80kg까지 나갈 때 밖에 나가는 것조차도 싫었고, 잠을 자면서도 어깨와 무릎으로 전해지는 고통을 참아내기 위해서는 아침저녁으로 밥은 먹지 않아도 약은 챙겨먹어야 했었다.

     

     

    아파트 베란다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학교 담벼락 사이로 개나리꽃이 만발한 운동장을 바라보며, 언제쯤 딸아이가 나올지 교문에 꽂힌 눈을 때지 못하고 아이들 모습 하나하나 살피다가 딸아이가 나오는 모습을 확인한 후에야 긴 안도의 숨을 내쉬며 현관문 앞에서 기다리는 엄마에게 달려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조잘대며 이야기 밭에 씨 뿌리 듯 늘어놓았던 딸아이, 지금도 생각나는 말은 ‘우리선생님은 판사 같아요. 누가 잘못 했는지 우리는 잘 모르는데 금방 알아내셔요. 억울한 누명을 쓸 뻔 했는데, 선생님이 구해 주셨어요.’

     

    이렇게 조잘대는 소리에 조용히 빈 노트에 매일 선생님께 일기 편지를 썼다. 잘못해서 꾸중을 들었을 때는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 하다는 말씀도 그날그날 아이를 통해 듣는 학교 이야기를 편지글로 써 내려갔다.

     

    5월 15일 스승의 날, 그 무렵 촌지문제로 한창 매스컴에서 떠들던 때여서 딸아이 선생님께 무엇을 선물해야 할지 망설였는데, 고민을 하다 조심스럽게 일기편지를 포장해서 아이 편에 보내고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후회를 하며, 싫어하시지나 않을까 불안하고 초조해 하였다.

     

    그런데 이틀 뒤, 핑크색 편지지에 쓰여진 선생님의 긴 편지는 나를 더 감동하게 하였다.

     

    ‘지금껏 교편생활을 하며 이 같은 귀한 선물은 처음’ 이라며 너무 좋아 하셨다. 보잘것없는 편지글에 고맙게 생각해 주시는 선생님께 오히려 몸둘바를 몰랐는데, 그 뒤로 선생님은 나의 트레이너가 되어 주셨다.

     

    20년이 넘게 약을 먹어온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짐이 될 것 같아서 아이들을 볼 때마다

     

    지금도 두려운 마음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울컥하며 올라올 때, 주체 할 수없는 눈물이 나오면 아이들에게 들킬까봐 돌아서 닦으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은 ‘엄마 또 아파, 약 가져올까?’ 한다. 그러면 나는 아이들 고사리 같은 손을 잡아 내 두 볼에 가져다 대고는 한참을 말없이 울곤 하였다.

     

    저녁마다 어린 딸아이와 유치원 다니던 아들 녀석은,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를 붙들고 ‘하나님은 우리들 소원을 다 들어 주신다고 하셨지요? 그럼 우리엄마 아프지 않게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간절한 기도를 한다. 지금도 그런 기억들을 생각하며 가슴이 저려온다.

     

    딸아이가 2학년 올라갈 때, 집으로 소포가 날아왔다. 보낸 이가 아이의 담임선생님이었다.

     

    연골이 닳고 있어서 오래 걷는 건 무리인줄 알지만, 이거 신고 조금씩 걸어보라며 선생님께서 건강 신발을 사서 보내셨다. 너무 소중하고 닳을까봐 겁이 나서 운동 할 때는 다른 것 신고, 외출 할 때만 신었다. 선생님이 어떻게 눈치 채셨는지 이후로 운동할 때 신고 열심히 운동하라고 하면서, 다음에 또 하나 더 사주신다고 하시며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아이들 옆에서 힘이 되어야 한다며, 건강한 모습 보여주라고 만날 때마다 힘이 되는 말씀을 해 주셨다.

     

    남편이나 어머님께서도 등산이 힘들면 중랑천이라도 조금씩 걸어보라며 권해서 2년 동안 그야말로 비가 오면 우비에 우산 쓰고 걸었고, 눈이 오면 등산화를 신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걸었다.

     

    처음에는 발과 무릎이 퉁퉁 부어 다음날은 통증을 느낄 정도이었는데, 하늘이 돕는지 일주일쯤 지나자 붙기도 빠지며 컨디션도 좋아졌다.

     

    2년을 하루같이 운동하며 건강했던 모습으로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지금도 완전히 다

     

    낳은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 눈이 오면 아이들과 눈싸움도 하고, 여름에는 함께 계곡에서 물놀이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이 힘들거나 감기라도 걸리면 발등과 뒷목부터 뻐근해지면서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그러면 얼른 약을 먹고 쉬며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리지만, 삼일내지 일주일 정도는 푸석푸석 부은 얼굴로 돌아다니다 보면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담긴 위로의 말은. ‘며칠 무리 하더라 싶더니, 또 아픈 모양’이라며 측은해 한다.

     

    딸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선생님께서 찾아 오셨다. 졸업과 입학을 축하한다며 함께 식사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계속 선생님과 함께 메일을 주고받았었다. 학부모와 아이 선생님이라기보다는 어머니 같았고, 늘 아이들 문제에 있어 상담자가 되어주셨다. 그때마다 나의 건강문제도 체크해주셨다. 그랬던 선생님이었는데 며칠 전, 선생님께서는 유방암으로 수술을 하셨고, 지금 항암 치료를 하고 계신다. 요즈음 의학기술도 약도 좋아 졌으니 반드시 회복하시리라 믿는다.

     

    지금껏 교편생활을 하시며 상처받는 어린 영혼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베푸셨고, 그 아이들을 위해 많은 기도를 하셨던 분이다.

     

    보름마다 항암치료하시면서, 투병중인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선생님은 내가 아파 힘들 때 많은 힘이 되어주셨는데, 지금 그분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답답한 마음이지만, 선생님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의 위로와 격려에 힘입어 이겨 내실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