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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문학방송 박성배 부이사장의 기사

남승원(외향) 2011. 10. 21. 17:50

2011년10월20일 18시42분
작가(시인)와 무의식의 세계

[박성배]

흔히, 어떤 글을 읽고 따스함이 느껴지지 않을 때, 마음이 없이 머리로만 쓴 글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글은 마음(心)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머리

▲ 박성배 아동문학가
(腦)로 쓰는 것이다. 니시다 후미오는「된다, 된다 나는 된다」라는 책에서 사람이 변하려면 ‘뇌’를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즉 마음을 바꾸는 방법이 바로 뇌를 바꾸는 것이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라고 할 때 마인드 즉 긍정적인 마음도 실은 뇌를 통해 가능한 일이다.

사람은 하루에 약 700만 개의 뇌세포를 활용하는데, 이 뇌에는 약 1조개의 뉴런이라고 하는 신경 세포가 있으며, 이 1조개의 뉴런은 1,000조개의 시냅스를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수 천대의 슈퍼 컴퓨터와 맞먹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우주처럼 방대한 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이 뇌 어딘가에 우주의 은하수처럼 펼쳐져 있는 무의식의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산문이든 운문이든 문인이 작품을 창작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를 들어 질문한다면, 생텍쥐페리가「어린왕자」를, 박목월이 「나그네」를 완성했을 때 그 작품(시)을 완성하기까지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들은 쉽게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작가(시인)의 경험은 작품을 쓰는데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생텍쥐페리가 비행기 고장으로 사막에 불시착한 경험이나 박목월이 어린시절 경주에서 타는 듯한 저녁놀을 경이롭게 바라보고 자란 경험이 없었다면 위의 두 작품이 창작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어떤 작품을 쓰는데 결정적인 모티브가 되었다는 것 때문에 작품을 완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작품을 쓰기 위한 어떤 모티브를 붙잡았을 때 소설가는 픽션의 과정을 거치고, 시인은 심상이나 은유를 활용하여 단순한 모티브를 생명이 있는 작품으로 다듬게 된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픽션을 주도하는 작가의 상상력이나, 시인의 심상이나 은유가 나오는 곳이 바로 무의식의 세계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어떤 사람의 무의식의 세계는 그 사람의 작품 세계를 결정지어 주는 보고(寶庫)가 되는 셈이다. 심리학자 프로이드는 이 무의식을 보통 자유롭게 의식화 할 수 없는 것들, 즉 자아의 억압이라고 하는 특수한 힘에 의해서 의식으로부터 망각의 먼 곳으로 쫓겨난 것들이 존재하는 광대한 세계라고 했으며, 융은 무한정 넓게 펼쳐진 무의식의 세계가 바다라면 의식은 그 한 가운데에서 생기는 섬(빙산)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람에게, 특히 문인들에게 이 무의식이 중요한 것은, 무의식이 살아있어서 의식과 항상 상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무의식이라는 바다와 의식이라는 섬은 바다와 육지 관계처럼 안정된 관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서로 내용을 교환 한다. 융은 무의식에서 떠올라 명확하게 머리에 남는 것도 있고, 그렇게 강한 힘을 지니고 있지 않아서 의식까지 떠오르지 못한 것도 있고, 또한 한 번 의식되었다가도 금세 상실되어서 무의식의 밑으로 가라앉는 것도 있다고 했다.

이런 관계를 창작 활동에 적용하면 사람은 자기가 갖고 있는 무의식의 세계에 없는 내용을 상상하거나 메타포(Metaphor)를 활용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풀어 이야기하면, 문인이 작품을 쓰기 위하여 어떤 모티브를 가졌다면 그건 의식이다. 문인은 그 의식(모티브)을 무의식의 바다에 드리우고 모티브를 작품화 하기에 알맞은 상상과 메타포를 낚시를 하듯 건져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비유는 슬로우비디오처럼 생각해 본 것이고, 실은 무의식의 세계에 있던 경험들이 어느 순간 특별한 자극에 의해 순간적으로 의식 세계로 올라오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윌터 데라메어는 “먼 훗날에 가서 그 옛날의 아주 까맣게 잊어버린 어린 나날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기쁨, 말로는 나타낼 수 없는 즐거움과 행복, 또는 두려움 ․ 슬픔 ․ 괴로움을 순식간에 홀연히 다시 생각하는 일이 가끔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바로 그 말(馬), 그 참나무, 그 데이지(백색, 홍색, 홍자색 따위의 꽃을 피우는 국화과 여러해살이풀)를 반짝하는 순간에 보는 것이다. 흘러간 옛날 언젠가 본 그대로, 그 때의 마음과 그 때의 감각 그대로 생생하게 그 경험은 계시(啓示)였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작가(시인)들에게는 일반 사람들과 달라야 할 두 가지가 요구된다. 첫째는 자신의 무의식의 세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다. 일생을 통하여 오감으로 경험한 것과 희노애락의 감정 등이 그 사람의 무의식의 질을 결정한다. 풀 한포기를 보더라도 별스럽지 않게 지나치는 사람과 유심히 관찰하고 많은 것을 생각하며 지나친 사람과는 무의식에 담기는 내용의 질이 달라진다. 또 책을 통한 간접 경험도 무의식의 세계를 풍요롭게 한다. 물고기가 많지 않은 바다에 아무리 그물을 내려도 만선의 기쁨을 누릴 수 없듯이 척박한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좋은 작품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는 무의식의 바다에서, 번뜩이는 계시(啓示)를 의식 세계로 끌어들이는 능력을 갖추는 일이다. 함영군 가야읍에 있는 성산산성의 지하 4~5m의 연못 발굴 현장에서 700여년 전의 고려시대 연(蓮) 씨앗 10개를 발굴하여 그 중 3개의 씨앗을 발아시켜 꽃을 피웠다고 한다. 이 10개의 씨앗을 무의식의 바다에 떠 있는 내용들이라고 본다면 3개의 씨앗은 의식 세계로 끌어올려 꽃 피운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개인의 뇌 속에 간직된 무의식의 세계는 작가(시인)가 쓴 작품을 통하여 표출되지만, 실은 ‘감정’이라든가,‘성격’이라든가,‘인격’이라든가 하는 다양한 형태로 수시로 나타나곤 한다. 따라서 평소에 무심코 나타나는 무의식을 잘 관찰한다면 훌륭한 작가 될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 하는 것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글을 읽고 따스함이 느껴지지 않을 때, 마음이 없이 머리로만 쓴 글이라는 표현대신 무의식의 세계가 빈약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 박성배(朴聖培)
아동문학가.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월간문학》2011년 8월호(권두언) 수록]


출처 : 노원문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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