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시인의 詩 <의자>에서 배우는 슬기
한번 앉은 의자에서 뭉그적거리며 일어서지 않으려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최후는 언제나 비참했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보면 한 나라의 정권을 손에 쥔 독재자가 그러했고, 어느 집단이나 심지어는 가족 관계에서조차도 의자에서 일어날 시기에 일어나지 않음으로써 불행을 자초하기도 한다. 자기가 앉았던 의자에 계속 앉아있기를 고집하는 사람은 마치 릴레이 주자가 자기 바톤을 다음 선수에게 주기 싫어하는 사람과 같다. 운동장을 이미 달려와서 힘이 지친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고집을 부린다면 얼마나 안타깝고 추한 행동이 되겠는가.
의자에서 일어날 때를 잘 알고 실천하는 사람은 슬기로운 사람이다. 집단의 아침을 마련하며 발전에 밑거름이 되는 사람이다. 기세가 등등하던 시어머니라도 적당한 시기에 며느리에게 집안 열쇠를 맡기는 시어머니는 의자에서 일어날 시기를 잘 선택한 슬기로운 시어머니이다. 직장에서 정년을 맞아 후임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서는 것도 아름다운 바톤 터치이다.
조병화 시인은 이렇게 적당한 시기에 의자를 내어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시로 노래하고 있다.
새것을 위하여 낡은 것은 물러가게 마련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평범한 시어의 선택과 시상의 전개로 빚어 놓은 시이다. 의자를 물려주는 행위는 새싹을 돋을 수 있게 물러가는 나무들처럼 자연의 아름다운 이치이며, 어느 사회나 집단을 막론하고 더 발전하고 새로워질 수 있게 하는 슬기로운 배려인 것이다. 한 가정의 기둥인 가장이라 할지라도 70이 넘고 80에 가까운 나이에 들면 조용히 주장을 덮고 물러서 있어야 한다. 자기 판단으로 자식들의 행동을 못 미더워하고 일일이 간섭하려 든다면 그 가정은 불화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어느 집단이나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노년에 의자에 집착하여 권모술수(權謀術數)를 부리는 일처럼 추하고 눈살 찌푸려지는 일도 없다. 조병화 시인의 詩처럼 <먼 옛날 어느 분이/내게 물려 주듯이> 그 분을 위하여 의자를 내어주어 진정한 아침을 마련해 줄줄 아는 지혜와 슬기와 덕망을 갖춘 노년을 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할 때,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나 또 다른 어느 집단이라도 의자를 내어주고 조용히 바라보는 분을 존경하고 잘 모시는 관계도 유지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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